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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94-1편패러디 소설/소전 패러디 2020. 4. 1. 15:55
“보좌관, 보좌관.”
“응? 왜, 마일리?”
“이번에 지휘관이 멀리 나가는 거 알지?”
“응. 그거야 지시를 받았으니까.”
“그거 때문에 그러는데 부탁 좀 할 수 있을까?”
눈을 감고 보좌관을 부르는 사람은 마일리라고 불리는 ak-12.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무언가를 부탁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은 마일리는 지휘관과는 다르게 군수지원에 관련된 일을 처리하는 보좌관에게 다가갔고 보좌관은 그런 마일리의 모습에 불안함을 느끼고 주춤거렸다.
저런 표정을 했을 때에는 언제나 힘든 일이 있었지…….
그렇게 중얼거린 보좌관은 일이 있다고 말한 다음 도망치려다가 마일리가 슬쩍 실눈을 뜨자 움찔 떤 다음에 한숨을 내쉬면서 얼굴을 가렸다.
“무슨 부탁이야? 애들 군수지원 돕는데 무리가 생기는 일이면 안 되는 거 알지?”
“후후, 그건 걱정하지 마. 보좌관. 공과 사를 구별할 수 있는 일이니까. 도와주는 거지?”
“무슨 일인지…….”
“도와주는 거지?”
“……들어볼게.”
“응. 도와주는 거네.”
“…….”
마일리의 말에 한숨을 내쉬면서 자판기에서 보리차를 뽑아 마시며 말해보라고 턱짓했고 마일리는 입을 열었다.
“이번에 평야에서 다량의 철혈이 발견되었는데 적들이 대부분 프롤러와 디너게이트 같은 거라서 나만 나가게 되었거든.”
“안구사 문제구나?”
“응. 설명을 해줬더니 납득을 하면서도 불안해하는 거 같아서 잘 못 지낼 거 같아서 말이야. 보좌관이 신경 써줄 수 있을까?”
“으음……, 뭐, 그 정도 부탁이면 들어줄 수 있는 범주 내의 일이네. 알았어.”
“그럼 보좌관의 집에 보낼게?”
“……누가 거기까지 한댔!?”
“으응? 도와주는 거지?”
“부하 인형한테 협박이나 당하다니…… 흑, 도와줄게.”
마일리의 말에 눈물을 흘리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보좌관.
정말로 마일리가 인형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보좌관은 어차피 다른 인형들의 상담을 들어주는 것과 다를 것 없다고 생각하면서 한숨을 내쉬었고 마일리는 그런 보좌관의 한숨에 안심했다면서 손을 흔들고 복도 저편으로 사라졌다.
“……하아. 거기에 있지?”
“언제부터 눈치 챘나?”
“그야 처음부터. 마일리의 시선이 가끔 내 뒤로 가는 걸 확인했거든.”
“마일리는 눈을 감고 있을 건데?”
“그냥 눈치로 깨달았다고 생각해. 시선이 움직이는 건 사람들이 눈을 보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분위기로 판단하는 거니까.”
보좌관은 거짓말이 능숙한 사람이라면 시선처리 정도는 죽 먹듯이 해서 자기만의 방법으로 시선을 읽었다고 말한 다음 안구사에게 오늘 일정이 있냐고 물어봤고 안구사는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군수지원은 이미 네 팀을 다 보냈으니까 더 못 보내고 경비 시프트에 갑자기 다른 인원을 넣으면 이리저리 꼬여서 못 하고…… 음식은 할 줄 알아?”
“서바이벌 푸드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다.”
“……좋아. 그 부분도 못 맡기겠네.”
“미안하다. 보좌관.”
“아니, 못 하는 건 어쩔 수 없지. 오늘은…… 뭐, 오늘은 쉬자. 나갈 준비할까?”
“보좌관의 일은 아직 안 끝난 게 아닌가?”
“끝났어.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하는 건 개인적인 정비일과. 굳이 안 해도 되는 거야.”
“개인정비는 중요하다.”
“그거야 그렇지만 여기 와서 서류 볼래?”
“이건…….”
“다른 애들의 상담과 관련된 거야. 보통은 편식하니까 고칠 방법이 없을까 물어보는 거고 그래서 오늘은 너랑 있는 걸로 괜찮다고 말하는 거야. 납득했을까?”
“그렇군. 알겠다. 보좌관. 그럼 나갈 준비를 하고 오겠다.”
“그래~.”
딱딱한 안구사의 말에 적당히 손을 흔들면서 무거운 제복을 벗는 보좌관.
실전성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군복이 아니라 남들에게 보이는 걸 우선으로 만든 군복이라 어쩔 수 없지만 모두들 잘도 이런 옷을 입고 다닌다고 생각한 보좌관은 청바지와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밖으로 나왔고 내일 있을 군수지원에 대한 정보를 읽고 있던 dsr은 평소와 다르게 일찍 퇴근하는 보좌관을 보며 인사했다.
“어머, 보좌관. 오늘은 일찍 나가네?”
“응, 마일리 부탁으로 돌아올 때까지 안구사랑 지내게.”
“그거 질투 나는 걸.”
“……덮칠 거면 언니 덮쳐. 열쇠는 줄 테니까.”
“지휘관은 이번에 멀리 나가서 당분간 없잖아?”
“……저번에 성인용품 산 거 비밀로 해줬잖아. 그거는 어떻게 했어?”
“……데헷?”
“하아, 이번에도 몰래 반입해줄 테니까 그걸로 봐줘. 알겠지.”
“응, 고마워. 보좌관.”
dsr의 눈빛에 마일리와는 다른 위기를 느낀 보좌관은 뒤로 물러서면서 dsr과 협상했고 다행히 개인적인 용무가 있었던 dsr은 순순히 물러나면서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인형들이 자신이 필요한 걸 요구하면서 보좌관의 근처로 몰리기 시작했고 보좌관은 개인 수첩을 꺼내서 애들의 요구를 기록하고 각자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했고 안구사는 그런 보좌관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보좌관이 간신히 빠져나오자 손을 내밀었다.
“괜찮은가?”
“응? 아, 응응. 괜찮아. 괜찮아. 요즘 일이 많아서 개인용품과 관련된 보급을 제대로 안 했으니까 어쩔 수 없지. 아…… 안구사.”
“응?”
“미안한데 오늘은 바로 집에 못 가겠어. 쇼핑하는 것 좀 도와줄래?”
“알았다.”
“안구사는 뭐 필요한 거 없어? 쇼핑 도와주는 거니까 무리한 부탁이 아니면 최대한 들어줄게.”
“응? …….”
보좌관의 말에 진지하게 고민하는 안구사.
보좌관은 안구사의 모습에 원하는 게 많았나 싶어서 안구사가 느긋하게 대답할 수 있게 최대한 천천히 걸으면서 안구사의 대답을 기다렸고 안구사도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마일리가 사격연습 할 때 사용하는 귀마개의 커버가 떨어진다고 말했었다.”
“으, 으응? 그건 마일리가 원하는 거잖아?”
“마일리가 원하는 건 나도 원한다.”
“아니……. 으음……. 그러니까 구사야? 그건 마일리의 군용 용품으로 들어가서 마일리가 직접 신청해야만 내가 사줄 수 있어. 안 그러면 물자를 관리하기가 힘들거든.”
“그런가……? 그럼 내 귀마개도 필요하다.”
“구사의 귀마개는 얼마 전에 사줬잖아.”
“읏…….”
보좌관은 마일리의 용품을 자기가 사려고 하는 안구사를 보고는 한숨을 내쉬다가 마일리가 걱정하던 것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마일리를 제외하면 일상생활을 제대로 못 하는 구나.
작전에 있을 때에는 혼자서도 냉정하게 판단하고 작전을 수행한다고 말했을 때 왜 작전에 있을 때에는 부가설명이 붙었는지 궁금해 했지만 당황해하고 있는 안구사를 바라보자 보좌관은 대충 마일리의 걱정에 공감하며 안구사의 등을 가볍게 쳤다.
“지금 못 정하겠으면 당장에 정할 필요는 없어. 쇼핑이나 가자.”
“알겠다.”
보좌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안구사.
보좌관은 그런 안구사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면서 차를 몰고 쇼핑몰에 들어갔고 주차장에서 나오자 말자 곧바로 일하기 시작했다.
“우선 춘전이가 부탁한 일부터 처리하자.”
“알겠다. 뭘 사면 돼지?”
“프라이팬. 카페에 밀푀유 같은 메뉴를 추가하고 싶다고 해서 사각형 프라이팬을 사주기로 했어.”
“그런가? 그럼 이거면 되지 않나?”
“아니, 으으음…… 나쁜 건 아니지만 춘전이는 두꺼운 팬을 원했거든, 근데 그건 내가 2달 전에 사줬던 거라 좀 더 두꺼운 걸 사야할 거 같네.”
“그런가? 미안하다.”
“딱히 미안한 일은 아니잖아. 아하하…….”
보좌관은 자기보다 키가 큰 안구사를 올려다보다가 괜찮다고 말하고 팬을 여러 개 들었다가 놓는 걸 반복하면서 무게를 가늠했고 이내 조금 작은 크기의 프라이팬을 들고 쇼핑카트에 넣었고 뒤집개와 짤 주머니까지 카트에 집어넣고 돌아다녔다.
“그 다음은 대용량 잭 다니엘……. 도대체 이런 걸 왜 마시는 걸까?”
“잘 모르겠다. 미안하다.”
“아, 아니. 딱히 대답을 듣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안구사의 대답에 머리를 긁다가 어색하게 웃던 보좌관은 M16이 자주 마시던 잭 다니엘스를 쇼핑카트에 넣고 담배를 사러 갔고 안구사는 보좌관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마일리가 마지막으로 한 말을 몇 번이고 다시 떠올렸다.
자기가 없을 동안엔 보좌관과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해줄 테니 보좌관을 도와주라던 마일리의 부탁.
도와준다는 것이 정확하게 뭘 도와주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마일리가 부탁한 일이니 자신이 인형으로서 도와줄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안구사는 보좌관이 쇼핑을 끝낼 때까지 침묵을 지키며 주변을 경계했고 보좌관은 그런 안구사의 행동에 웃는 채로 굳어버렸다.
지금 뭘 하는 걸까…….
아마 날 도와주는 거겠지?
마일리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느긋하게 가르치는 못 할 테니 자세하게 설명을 안 했을 거고 고지식한 안구사는 그런 마일리의 말을 곧이곧대로 해석해버려서 이렇게 된 거겠지.
그렇게 생각한 보좌관은 카드를 꺼내 결제하면서 어떻게 안구사에게 설명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