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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94-2편패러디 소설/소전 패러디 2020. 4. 30. 01:58
“살 건 다 샀고…… 그럼 돌아갈까? 안구사.”
“알겠다. 보좌관.”
“아하하…….”
여전히 딱딱한 말투로 대답하는 안구사의 대답에 어색하게 웃는 보좌관.
다른 인형들 말로는 누구에게나 이렇다고 들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안구사가 자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할 뻔한 보좌관은 본부로 택배를 부탁한 다음 안구사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고 시간이 꽤 늦은 걸 확인하고는 배달음식 전단지를 들면서 고민에 빠졌다.
마일리에게서 안구사의 음식 취향 같은 건 모두 들어둔 상황.
좋아하는 요리는 러시아식 만두라거나 간이 안 된 빵과 소금.
반대로 싫어하는 요리는 향이 강한 한정식.
보좌관은 안구사의 의존적인 성격을 한 번 시험해보고자 안구사에게 먹고 싶은 게 있냐고 물어보면서 한식집 배달 전단지를 건네주었다.
“시켜 먹을까 하는데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이건…….”
“마일리가 안구사는 한식을 좋아한다고 하더라고.”
“……그렇다. 나는 한식을 좋아한다. ……보좌관, 잠시 고민하겠다.”
그 결과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바꾸는 안구사의 모습이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전단지 중에서 그나마 먹을 만한 것들을 고르는 것 같은 안구사의 모습에 보좌관은 쓰게 웃다가 전단지를 바꿔서 만두 전문점 전단지를 건네주면서 가볍게 안구사의 이마를 때렸고 안구사는 그런 보좌관의 행동에 고개를 들어 보좌관을 바라보았다.
“농담이야. 마일리는 안구사가 만두나 소금 빵을 좋아하는 걸 알고 있다고.”
“…….”
“펠메니……라고 하던가? 그건 없겠지만 여기에서 골라서 적당히 주문해줘.”
안구사에게 5만원을 하나 건네주면서 주문을 부탁한 보좌관.
안구사는 보좌관을 바라보다가 왜 이런 농담을 했냐고 물어보며 보좌관을 쳐다봤고 보좌관은 그런 안구사의 질문에 컵을 2개 꺼내면서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왜 그런 농담을 했지? 보좌관.”
“응? 왜?”
“마일리가 떠나기 전에 내게 농담을 배우면 좀 더 재미있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마일리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다.”
“헤에…… 마일리가 그런 부탁을 했구나. 하긴 마일리는 재미있는 아이니까 그런 부탁을 했을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그거 정말 농담을 배우라고 한 걸까?”
“무슨 소리지?”
“농담을 배우라고 한다면 그냥 농담 모음집 같은 걸 사줬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확실히, 그 쪽이 좀 더 효율적이다. 하지만 마일리의 판단이라면 무언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하하……. 안구사는 마일리를 정말 좋아하나보네?”
“……? 나는 그녀의 대체품이다. 좋아한다거나 그 이전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안구사의 대답에 마일리는 바로 그런 부분을 고쳤으면 하는 거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는 보좌관.
하지만 자신이 그렇게 말한다면 안구사는 별 반 다르지 않는 방식으로 생각할 게 뻔했기에 보좌관은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면서 안구사와의 대화를 이어갔다.
“그럼 일단은 마일리가 왜 그런 부탁을 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는 건 어때?”
“무슨 소리지 보좌관?”
“왜, 전술의 기본 중 하나는 적의 사고를 따라가서 적의 앞을 앞질러가 적의 약점을 찌르는 거잖아? 그것처럼 마일리의 사고방식을 따라가서 마일리가 왜 그런 부탁을 했는지 알아내서 마일리의 부탁을 만족시키는 게 아니라 마일리를 만족시켜보는 거지. 어때?”
“……일리가 있군. 보좌관. 하지만 내가 가능할까? 나는 그녀의 대체품이다.”
“대체품이라고 해도 안구사는 안구사만의 기능이 있잖아?”
“그건 단지 내가 전자전을 못 하는 대신에 남은 용량을 전투에 투자해서 그렇다. 마일리가 나와 비슷한 용량의 전투정보를 메모리에 투자한다면 마일리가 나보다 더 효율적일 것이다.”
“아하하……. 하지만 그러지 않지? 그러니까 같이 생각해보자.”
“알았다. 보좌관.”
다른 애들이라면 자신을 그저 인형이나 대용품이 있는 것들로 말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지만 안구사의 경우에는 그러면 더더욱 거세게 반발할 게 틀림없었기에 보좌관은 만두를 주문하는 동시에 안구사에게서 마일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자 보좌관은 살짝 질려하는 동시에 안구사가 마일리를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정말 세세한 것까지 지켜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정보가 가득한 안구사의 말.
보좌관은 안구사에게서 질릴 정도로 이야기를 듣다가 만두가 오자 만두를 먹으면서 안구사의 식사취향이나 식사의 진행 방식 같은 이야기를 들었고 보좌관은 그런 안구사의 말들에 질린다는 얼굴을 하고 말았다.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혹시 안구사는 대인관게에 필요한 대화모듈을 전부 마일리에게 꼴아박은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던 보좌관은 안구사가 어째서 마일리의 의견을 눈치 못 채는 건지 의심하기 시작했고 이내 전투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가자 안구사가 자신을 마일리의 보조부품이라고 말하기 시작하면서 대충 알게 되었다.
아마 진심으로 저렇게 생각하는 거겠지.
인형 중에는 자신이 인간의 대용품이라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다른 인형의 보조부품으로 생각하고 있는 일이 비일비재했기에 보좌관은 한숨을 내쉬면서 안구사를 바라보다가 안구사의 뺨을 양 손바닥으로 꾹 눌렀다.
“……무슨 짓이지 보좌관.”
“우선 마일리의 생각을 읽으려면 안구사가 개인적인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할 거 같네.”
“……? 내게 개인적인 생각은 의미가 없다. 나는 마일리의 대용품. 마일리가 시키는 것을 성실하게 수행하면 되는 것이다. 그 외에 무슨 의미가 있지?”
“만약 안구사가 마일리의 부탁만을 만족시키면 마일리의 명령이 끊어지면 안 돼. 그렇게 계속 통신을 하는 게 전투 중에서 얼마나 부담이 되는 일인지 알고 있지?”
“…….”
보좌관의 말에 눈살을 찌푸리지만 딱히 반박은 하지 못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안구사.
전투는 불규칙적이고 제멋대로다.
항상 예상외의 상황이 발생하고 그 때마다 안구사는 마일리의 명령을 듣고 움직였었고 그 부분에 대해서 안구사도 문제점이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안구사는 보좌관의 말에 확실히 그러는 게 좋겠다면서 마일리의 사고를 쫒을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럼 사고를 쫓는데 가장 필요한 건 뭘까?”
“대상의 사고방식을 알아내는 것이다. 보좌관.”
“응, 잘 알고 있네. 역시 안구사야.”
“하지만 보좌관, 문제가 있다.”
“응? 뭔데?”
“내가 안구사의 사고모듈을 이해한다고 해서 내가 그 사고를 따라갈 수 있을까? 마일리는 나보다 월등히 뛰어난 성능을 지닌 인형이다. 거기에다가 나와는 다르게 만능형. 사고모듈의 기본 전제가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
“아아…….”
하지만 안구사는 기껏 계획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얼굴을 하면서 보좌관을 바라봤고 보좌관은 그런 안구사의 말에 이해한다며 등을 토닥여줬다.
애초에 자기가 누군가의 보조부품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걸 한 번에 고칠 수 있었다면 이 세상에 심리학이라거나 그런 건, 어디에도 쓸모가 없는 학문이 됐겠지.
“그러려고 내가 있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
“보좌관이……?”
“응. 도와줄게. 같이 해보자.”
안구사의 등을 토닥이면서 같이 힘내보자고 말하는 보좌관.
안구사는 그런 보좌관의 말에 고맙다고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도 자신이 과연 마일리의 명령을 수행할 수 있을지 없을지 의심에 빠진 채 잠에 빠졌다.
그리고 다음 날, 보좌관은 마일리가 돌아올 때까지 안구사와 계속 달라붙어서 지내면서 일을 보기 시작했고 일을 끝낸 저녁에는 언제나처럼 마일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안구사의 개인적인 생각을 찾아갔다.
1일 째에는 그냥 객관적인 사실만을 이야기하는 안구사.
2일 째에는 공개적인 작전에서 마일리가 어떻게 움직였고 어떤 작전을 사용했는지 말했었고 3일 째에는 일상생활에서 마일리가 어떤 걸 즐기고 어떤 걸 싫어하는지를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순조롭게 말하던 것과 달리 4일 째에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보좌관을 뚫어져라 쳐다봤고 5일째 되는 날, 안구사는 보좌관에게 처음으로 마일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래도 괜찮은 것인가? 보좌관?”
“응? 무슨 소리야?”
“마일리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 할수록 느껴지는 거지만…… 나는 마일리에 비해서 부족하다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나는, 마일리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 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 처음으로 꺼낸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자기 비하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