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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구랑 이야기하다가 떠올라서 쓴 단편
    소설들/라노벨은 아닌데 일단 쓴 걸 정리하는 곳! 2020. 3. 1. 15:35

    잠에서 깼다고 느낀 건, 오후가 거의 다 지나가고 난 뒤였다.

     

    하품을 늘어지게 하면서 보는 방은 엉망이었지만 잠에 빠지기 전까지 만지작거리던 인형이 있는 곳만큼은 깔끔해 난 기묘한 뿌듯함을 느끼며 자리에 앉았고 다시금 모형을 만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같이 사는 동거인은 무엇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 건지 뾰로통한 얼굴로 다가오더니 커피를 내려놓았고 나는 말끔한 모습의 동거인에게 인사했다.

     

    좋은 아, , 저녁이네. 좋은 저녁.”

     

    그래, 좋은 저녁. ……밤에 일하는 내가 할 말은 아닌데 제 때 자고 제 때 일어나.”

     

    아하하! 노력할게, 노력.”

     

    20대 중반에, 나보다 4살은 어린 주제에 건방지게 잔소리를 하는 동거인.

     

    나는 그런 동거인의 잔소리에 웃음을 터트리다가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면서 작업할 때 듣던 노래를 틀었고 동거인은 한숨을 내쉬면서 머리를 긁었다.

     

    과로사하려고?”

     

    , 그러면 기쁠 거 같지 않아? 좋아하던 일을 하다가 죽는 거잖아.”

     

    죽는 거 자체가 기쁘진 않은 일인데.”

     

    꽤 재미있는 농담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별로 유쾌하지 않은 듯 인상을 찌푸리는 동거인.

     

    아무래도 실수한 모양이네.

     

    그렇게 생각한 난 머리를 긁으면서 어색하게 웃다가 동거인이 만들어준 커피를 홀짝거리면서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농담이야, 그렇게 화내지 말아줘. 그리고 얼마 후면 마감이니까 좀 바빠도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그건 아는데, 오늘 몇 시간 정도 잤어?”

     

    보자…… 2시간?”

     

    ……속은 괜찮아?”

     

    죽을 거 같지만 이번 일만 끝나면 좀 쉬겠지.”

     

    동거인의 물음에 내 위장은 마치 자기가 할 말을 왜 동거인이 대신 하냐면서 화를 내듯이 크게 꿀렁였다.

     

    며칠 째 혹사하고 있어서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내 몸은 내 생각 이상으로 꽤 튼튼했는지 연달아서 꿀렁이기 시작했고 나는 몰려오는 복통에 쓰게 웃다가 커피를 내려놓았다.

     

    이 상태로 커피는 무리겠네.

     

    그런 내 생각을 읽은 듯 동거인은 내게 따뜻한 물을 건네주었고 나는 그 물을 마시면서 물만큼 뜨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흐아아…… 살겠다.”

     

    좀 자. 그러다 진짜 죽겠네.”

     

    아하하, 안 죽어, 안 죽어. 고기 얻어먹을 때까지는 살아야지.”

     

    건강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의 동거인이었지만 이번에는 꽤 무리한 만큼 나에게 잔소리를 퍼붓기 시작했고 나는 그런 동거인의 잔소리를 쓰게 웃으면서 듣다가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 같이 애정이 느껴지는 잔소리.

     

    나는 그런 동거인의 잔소리에 한숨을 내쉬다가 모형에서 손을 떼고 쿠션에 몸을 던지고 이불을 몸에 덮었고 동거인은 그런 내 행동에 그제야 만족했는지 외출할 준비를 했다.

     

    오늘은 쉬는 거야.”

     

    그래, 내일까진 푹 쉴게.”

     

    하아, 약속?”

     

    그래, 지금부터 잘게.”

     

    언제부터 잤는지, 그리고 얼마나 잤는지 실감은 잘 안 나면서도 몸을 부드럽고 따뜻한 곳에 눕히자 말자 내 몸은 2시간이나 잤음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졸음을 호소해 절로 하품이 늘어지게 나오고 말았고 나는 그런 하품을 즐기다가 눈을 가늘게 뜨면서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동거인은 불을 끄고 밖으로 나갔고 나는 그대로 이불의 따뜻함에 기대 그대로 잠에 빠졌다.

     

    그리고 나는 또 눈을 뜨게 되었다.

     

    하루에 두 번이나 잠을 잔다는 분에 넘치는 호사를 누리는 상황.

     

    그런 호사에 취했는지 내 몸은 잠에서 명백하게 깨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움직이며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었고 술을 마시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몸에서 술 냄새가 나는 동거인의 냄새에 나는 키득키득 웃으면서 콜라를 꺼내주었다.

     

    , 여기.”

     

    뭐야, 안 잤어?”

     

    잤어. 너 때문에 깬 거야. 그리고 좀 있으면 다시 잘 거고. 너도 씻고 잘 거야?”

     

    아니, 공부 좀 더 하고…….”

     

    후후, 너도 잘 쉬어.”

     

    너처럼 안 그래.”

     

    이게……. 킥킥, 하긴 내가 너한테 잔소리하기도 웃기네.”

     

    죽 사왔어, 일어난 김에 먹고 자.”

     

    그래. 고마워.”

     

    종이가방을 내밀면서 옷을 벗고 욕실에 들어가는 동거인.

     

    나는 그런 동거인의 모습에 내 죽은 3분 정도 돌리고 동거인의 죽은 2분을 돌린 다음 들기름과 간장, 그리고 김 가루를 작은 종지에 담아 내놓았다.

     

    김치는…… 씻은 게 좋을까?”

     

    죽을 먹을 때 간을 세게 잡는 동거인의 식성에 적당히 고민하다가 나는 씻은 걸 내놓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씻은 김치를 내놓았고 마지막으로 새우젓갈을 조금 담아 놓았다.

     

    그러자 동거인은 가볍게 세수를 끝낸 다음 밖으로 나왔고 우리는 같이 죽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공부는 어때? 잘 되가?”

     

    , 언제나 그렇지……. 평소대로야.”

     

    그래? 수고했어.”

     

    내 말에 어깨를 으쓱이는 동거인.

     

    나는 느끼지 못하는 차이를 느낄 정도로 입이 예민한 동거인은 죽 가게에서 주는 참기름 대신 들기름을 두른 다음 간장을 뿌려 젓가락으로 두어 번 휘젓더니 이내 불균일하게 섞인 죽을 삼켰고 나는 그런 동거인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소금과 참기름을 뿌려 죽을 먹었다.

     

    서로 피곤하기에 아무 말 없이 이어지는 식사.

     

    한참이나 이어지는 침묵 속 식사에 나는 잠시 숟가락을 놀리는 걸 멈추고 동거인을 바라봤고 동거인은 내 시선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

     

    그냥, 너무 조용해서 봤는데?”

     

    싱겁긴.”

     

    쿡쿡.”

     

    일상적인 대화에 싱겁다며 투덜거리는 동거인.

     

    하지만 동거인은 무언가 할 말이 생긴 듯 입을 열었고 나는 그런 동거인의 솔직하지 못 한 모습에 웃으면서 피로가 섞여있는 동거인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까 어제 아는 사람 한 명 과로로 병원에 실려 갔어.”

     

    몸은 괜찮으시데?”

     

    , 바텐더 자격증 딴다고 너무 무리하신 거니까 금방 괜찮아진댔어.”

     

    그래? 너도 그거 준비하는 중이지? 안 쓰러지게 조심해.”

     

    난 괜찮아. 아직 20대니까.”

     

    아하하! 그거 그 사람 앞에서 말해봐, 당장에 일어나서 너 때릴 걸?”

     

    그러니까 말 안 하잖아.”

     

    내 말에 작게 웃는 동거인.

     

    아는 사람이 병원에 있는 데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쿡쿡 거리며 웃어대던 동거인은 웃음을 멈추더니 정말로 조심하라며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고 나는 그런 동거인의 모습에 작게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진짜 조심해야 해. 불이랑 칼 앞에서 과로로 비틀거리면 진짜 크게 다친다고.”

     

    ……내 걱정하기 전에 너 걱정이나 해. 불이랑 칼이라고 해봐야 요리사들처럼 그렇게 많이 다루지는 않는다고. 그리고 , 내가 외출한 사이에 쓰러지면 어떻게 하게? 넌 혼자 일하잖아. 누가 도와주는데?”

     

    혼자서 일하는 건 아니지, 이렇게 보여도 자주 외출한다고?”

     

    일할 때에는. 그래서 난 쓰러질 거 같이 힘들면 내 동료들에게 부탁하면 된다지만 넌 아니잖아. 네가 쓰러지면 누가 도와주는데?”

     

    …….”

     

    집요하게 파고드는 동거인.

     

    늘 집안에 박혀서 일할 때, 서로의 의견을 조정할 때 빼고는 직접적으로 사람을 만나지 않기 때문인지 뭐든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나와 다르게 밤에 술을 파면서 늘 온갖 부류의 사람을 보는 동거인은 그런 내 말에 꼬투리를 잡으면서 잔소리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런 잔소리에 쓴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걱정하지 마. 이 일은 그래도 신뢰가 최우선이라 최소한의 컨디션 조절은 하니까. 이 일도 끝나면 한 며칠은 쉴 거야.”

     

    ……나는 네가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을 해줬으면 하는데.”

     

    평상시에는 꾸준히 하는데 이런 큰 돈이 걸린 일이 들어오면 어쩔 수 없잖아.”

     

    돈을 쫒으면 안 된다며.”

     

    그거야 그런데 현실적으로 필요한 돈은 있어야지. 이번에 슬슬 장비를 바꿀 때가 됐거든.”

     

    ?”

     

    보안경이랑 마스크, 도료랑 소형 스프레이건, 줄이랑…… 그리고 벽 보강이랑 이것저것. 집에 작업실을 만들었으니까 적은 소음으로 움직이는 게 필요하기도 하고.”

     

    꽤 많이 필요하네.”

     

    도구를 아껴 쓴다면 뭐, 잘 할 수 있지만 나는 도구를 혹사시키는 수준으로 물건을 다루니까!”

     

    자랑이야?”

     

    자랑이지. 물건을 아끼는 방식으로 혹사시켜 망가트린다는 건 엄청 열심히 일했다는 거니까. 과로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다는 거잖아? 뿌듯하지 않아?”

     

    과로 가지고 뿌듯해 하지 마……. 하아, 여하튼 걱정이라니까.”

     

    쿡쿡, 미안, 미안. 하지만 이건 정말 필요하다고? 내가 꿈꾸는 것과 현실을 양립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엄청 들어가니까.”

     

    그러니까…… 분명, 구체관절인형 전시회를 열고 싶다고 했었던가?”

     

    그래! 그렇다고. 그런데 그러려면 대관비에 내가 만족할 수준의 인형들과 인형 옷, 그리고 테마와 어떻게 손님들에게 내 작품을 피로할 것인지, 그런 것들을 하나 같이 다 알아서 하지 않으면 안 돼, 그러면 자연스럽게 어느 정도는 무리할 수밖에 없다고.”

     

    내 투정에 한숨을 내쉬는 동거인.

     

    현실적으로 몸이 견디는 수준에서 안전하게 일을 해야만 인생을 구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동거인은 내 꿈이 마음에 안 드는 건지 내 얼굴을 보더니 다시금 깊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렇다면 차라리 스폰서 같은 걸 구해보는 건 어때? 그러면 너도 좀 편할 건데.”

     

    아아, 그런 걸 생각 안 해본 건 아닌데, 스폰서는 이것저것 간섭하고 제출기한 달라고 하니까. 내가 아는 동료는 그게 너무 싫어서 중간에 위약금 물고 프리랜서로 나왔다고 했거든. 나도 그럴 거 같아서.”

     

    사람하고 잘 지내면 괜찮을 텐데.”

     

    후후, 그러게.”

     

    동거인의 잔소리에 작게 웃자 이번에는 동거인이 잘못했다면서 눈을 돌렸고 나는 그런 동거인의 행동에 킥킥 웃다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그 사람들은 이익을 쫓아 움직이고 나는 꿈을 쫓아다니며 움직이고 말이야. 서로 반목할 수밖에 없다고.”

     

    그 사이에서 잘 유지하는 게 매니저의 일인데.”

     

    안 돼, 안 돼. 그 중간점을 받아들이기 싫어서 과로하는 건데 그러면 아무 의미도 없잖아.”

     

    타협을 해.”

     

    그러기 싫어서 이렇게 하는 건데?”

     

    어휴…….”

     

    합의점이 안 나오는 대화가 답답한지 동거인은 한숨을 내쉬면서 죽을 먹었고 나는 그런 동거인의 모습에 미안함을 느끼다가 그와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이해하려고 하는 동거인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고마워.”

     

    뭐가?”

     

    이렇게 오랫동안 이야기해주는 사람은 너밖에 없거든.”

     

    ……그딴 소리는 그만하고 이제 쉬러 가.”

     

    그래, 너도 쉬어.”

     

    그래. 잘 자.”

     

    시끄러워.”

     

    죽이 없어지자 빈 그릇을 들고 싱크대에 담아두는 동거인.

     

    나는 반찬을 정리한 다음 불을 끄며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넸고 동거인은 그런 내 인사에 부끄러운 짓 하지 말라며 소리친 다음 불을 끄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럼 내일은 뭐할까…….”

     

    커튼을 친 채로 이불을 덮자 천천히 몰려오는 졸음.

     

    그 동안의 피로를 보상받으려는 듯 빠르게 내 몸을 뒤덮는 수마에 나는 인형에 대해서 계속해서 생각하다가 그대로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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