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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들/라노벨은 아닌데 일단 쓴 걸 정리하는 곳! 2020. 2. 6. 01:31

    나는 잠을 깊게 자지 못한다.

     

    3년 전부터 남아있는 상처가 지독하게도 아파서 잠을 자지 못한다. 아니, 애초에 잘 마음이라고는 3년 전부터 없었다. 잠을 자게 된다면 그 애에 대한 기억이 떠오를까봐, 아니, 왜곡될까봐 두려워서 잠을 깊게 자지 못한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자다가 깨다가를 반복하다가 또 어설프게 아침을 맞이해버렸다.

     

    …….”

     

    비몽사몽하다.

     

    피곤에 절여져서 비틀거리는 몸을 질질 이끌고 일어나서 아까부터 시끄럽게 울려대는 휴대폰을 꺼버렸다.

     

    버릇이 된 혼잣말로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뭘 해야만 하는 날인지는 안다며 들을 일 없는 휴대폰에게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차가운 물로 몸을 씻었다.

     

    샤워기의 세찬 물길과 물길의 머리를 으깨버릴듯한 한기에 정신을 차리고 앞을 바라보자 창백한 인상을 한 폐인이 한 명 있었다.

     

    자르지 않은 머리는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피로로 인해서 충혈 된 눈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체불명의 공포감에 빠지게 했다. 어떤 변명을 하던 이제부터 사람을 만나러 갈 얼굴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얼굴이다.

     

    역시 귀찮아도 수면제를 먹었어야 했던 것일까?

     

    이미 지난 일에 대해서 잠깐 후회를 하고나서 난 몸단장하기 시작했다.

     

    머리는 한 곳으로 모아 약간 느슨하게 묶었고 녀석이 좋아하던 향수를 조금 덜어내어 손목과 귀 뒤쪽에 발랐다.

     

    옷은 선물로 받은 옷을 꺼내 입었다. 다크 서클이라도 안 보이게 화장품을 바르고 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걔는 딱히 그런 걸 신경 쓰지도 않으리라는 생각과 환자에게 화장품의 성분은 독이 될 거라는 생각에 화장품은 바르지 않기로 하고 준비물을 챙기기 시작했다.

     

    준비물이라고 해봐야 별 건 없다.

     

    필요한 것은 꽃 몇 송이.

     

    걔 성격을 생각해본다면 꽃보다는 역시 게임기가 어울리지만 그 애는 언제나 꽃을 부탁했었고 처음의 그 부탁이 지금까지 이렇게 버릇으로 남아버렸다.

     

    단골의 꽃집에서 사온 꽃은 아직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일까 싱싱한 꽃잎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런 꽃잎이 일주일 뒤에는 아무리 꽃병에 꽂아놔도 시들어버린다니 늘 반복하는 일이지만 역시 상상이 되지 않았다.

     

    이건, 변화에 대해서 익숙하지 못해서 상상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과정을 보지 못해서 익숙하지 않아서 상상하지 못하는 걸까?

     

    잠시 생각해보다가 어느 쪽이든 짜증났기에 한숨을 쉬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은 집에서 꽤나 먼 위치에 있었다. 버스를 타고 30. 평소 집 안에 박혀서 글만 쓰는 나에게는 역시 꽤나 먼 위치였다.

     

    병문안을 가기 시작한 지 얼만 안 됐을 때에는 몇 번이고 버스를 잘못 탄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헤맬 정도의 위치에 있더라도 나는 꽤나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애가 걸린 병은 세계단위로 발견되는 드문 희귀병이었기에 이렇게 가까운 위치에 있는 병원에서 녀석이 입원할 수 있었다는 건 거의 기적이었다.

     

    신이라는 것은 믿지 않지만 그 때 만큼은 순수하게 감사하며 기도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지금은……. 글쎄. 잘 모르겠다. 난 신에게 감사하고 있을까?

     

    스스로에게 멍청한 질문을 하고는 피식 웃어버렸다.

     

    애초에 그 애가 병에 걸린 것을 원망해버린 시점이 왔을 때 신에게 감사할 시간은 이미 지나가버렸다.

     

    그런 걸 새삼스럽게 말로 꺼내야 아냐면서, 스스로를 자조하자 어느새 병원에 도착했고 나는 자동으로 열린 문 사이로 들어갔다.

     

    병원에 들어가자 날 맞이해주는 건 3년째 보고 있는 간호사였다.

     

    간호사도 이제는 내가 익숙한지 간단한 접수를 끝내고 몇 가지 주의사항을 말했다.

     

    그 말들을 듣고 있자 우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전염성이 있는 병도, 면역력이 극도로 취약해진 상태에 있는 것도 아닌데 이런 별 같잖은 주의사항을 들어야만 녀석을 만날 수 있다니 몇 번을 생각해도 아무래도 우스웠다.

     

    이 웃음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세상에 대한 분노에 들고 온 생화를 꽉 쥐고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를 타라고 한다면 탈 수도 있다. 아니. 그 편이 편하다.

     

    하지만 분명 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평온했던, 아니, 죽어있던 마음이 접수를 하고 나서부터 살아나서 두근거려 진정이 되지 않는다.

     

    벌써 3년 째 이 모양 이 꼴이다.

     

    나도 참 발전 없는 녀석이다.

     

    힘없는 목소리로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계단을 한 계단, 한 계단씩 올라간다.

     

    그 애를 보러 왔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보기 싫은 것 마냥 무거운 발걸음으로 한 계단씩 올라갔다.

     

    나는 어떻게 하고 싶은 걸까? 무거운 발걸음에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만나고 싶은 걸까? 만나고 싶지 않은 걸까?

     

    잠시 생각해보자 만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은 어차피 내 말에 대답 같은 건 안 해주니깐, 가봤자 소용이 없다는 건 알고 있으니깐,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돌아가면 되는 일이다.

     

    간단하다.

     

    돈이야 좀 낭비를 했지만 납득할만한 정도니 돌아가면 되는 일이다.

     

    무척 쉬운 일이다.

     

    하지만 어째선지 몸이 반대쪽으로 돌지 않았다.

     

    그저 위로, 위로 올라갈 뿐이었다.

     

    정말이지 모순투성이다.

     

    한심스러운 녀석이다.

     

    병실 문 앞에 서서 어떻게 할까, 목을 가다듬고 문을 두드릴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웃는 얼굴이 좋을 것 같아 억지로 웃었다가 이내 얼굴이 아파와 무표정으로 바꾸고 머리를 긁적이다가 문을 열었다.

     

    나 왔다.”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지만 반응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녀석은 자고 있었다. 몸에 이상한 것들을 주렁주렁 달아놓고선 마치 시체처럼 잘만 자고 있었다.

     

    이걸로 3년째다. 넌 잘도 자는구나?”

     

    소변을 모아둔 병이 거의 다 찬 상태였기에 나는 그 병을 갈아줬다.

     

    이 짓도 벌써 3년 째. 이제는 별 감흥이 없었다. 드는 생각이 있다면 저 녀석이 깨어나면 오줌 누는 방법부터 다시 배워야 되겠다는 생각 정도가 다였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녀석을 보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3년 전만 하더라도 몸을 움직이는 것에 대해서 극도로 피곤해 했지만 그래도 움직였는데, 이제는 자는 것 밖에 하지 않는다.

     

    언제 봐도 질 나쁜 농담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 현실, 말해야 할 것을 잊게 만드는 현실이다.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자 간호사가 들어왔다.

     

    간호사는 나에게 도와달라고 말한 다음 팔에 꽂힌 영양제 주사를 빼고 옷을 벗긴 뒤에 몸을 닦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 짓도 녀석의 나체를 보는 데에서 느껴지는 성욕과 그 성욕으로 인한 죄책감, 그리고 무력하기 짝이 없는 녀석의 모습을 보는 데에서 느껴지는 절망과 슬픔에 의해서 하지도 못하고 매일같이 토했지만 이제는 익숙하게 녀석의 몸을 주물럭거리고 있었다.

     

    나는 변해버렸다.

     

    그 마음에 들지 않는 사실에 한숨을 내쉬자 간호사는 설사 환자가 못 들을 지라도 환자 앞에서는 한숨을 쉬면 안 된다고, 자기도 지키지 못할 말을 하고서는 나갔다.

     

    그 말은 마치 책을 보고서 사람의 감정에 대해서 모두 안다고 말하는 것만 같아서 면상에 한 대 주먹을 날리고 싶었지만 혹시 녀석이 들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이상한 상상에 멋쩍게 머리를 긁으면서 곤히 자고 있는 녀석을 봤다.

     

    ……. 처음에 올 때에는 적당히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말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재미없을 것 같네. 대신 다른 이야기나 할까 싶은데 어때?”

     

    희귀병으로 인해서 벌써 3년째 잠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녀석이 대답할 수 있을 리가 없다는 건 경험으로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아까 네 몸을, 주로 얼굴을 만지면서 생각한 건데 너 근육이 거의 다 없어졌더라. 어느 정도냐면 아마 너 당장 깨어나면 고기를 씹어 먹는 건 무리일거야. 아니. ‘. 이 정도면 아주 약한 저작운동도 무리겠지. 유아식, 아니, 유동식이나 먹으면서 턱의 근육을 키우렴. 불쌍한 녀석아.’라고 중얼거릴 정도였어. 거기에다가 팔도 지방밖에 없더라. 이래선 고양이 카페에 가서 네가 좋아하던 새하얀 고양이를 안는 것도 무리겠지.”

     

    하하하하…….

     

    작게 웃었지만 병실에는 삑삑-거리며 아직 심장은 뛰고 있다고 알려주는 기계의 소리와 작게 들리는 녀석의 숨소리를 제외하면 소리라는 게 전혀 없었기에 꽤 크게 울려 퍼졌다.

     

    퍼지고, 퍼지고, 퍼지고……. 언젠가 녀석과 함께 갔던 공원분수에서 소원을 빌면서 던진 500원짜리 동전이 일으킨 파문과 같이 잔잔하게 퍼지는 소리의 파문을 듣고 있자니 왠지 스스로가 멍청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날 보면 네 녀석은 어떻게 반응할까? 옛날처럼 마음에도 없는 욕을 하면서 날 팰까? 아니면 마지막으로 깨어있던 날처럼 미친 듯이 울면서 날 아프게 할까? 나중에 병이 낫고 나면 뭘 할지 계획을 세울 때처럼 환하게 웃을지도 모르겠지.”

     

    , 일단 일어나는 게 먼저겠지만.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나에게 하는 것인지 녀석에게 보내는 것인지 모를 비웃음을 날리자 세상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색도, 형태도, 향기도, 시간도, 공기도……, 단지 녀석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다.

     

    확실하게 알겠는 건 네가 잠들었을 때부터 멈춰 서서 너만을 기다리는 것을 알고 있다면 빨리 가라고, 곧 따라 갈 테니 너를 잊고 먼저 가라고 말하겠다는 거겠지.”

     

    중학생 때부터 담배를 피우던 날라리인 주제에 묘하게 착하고 성실한 녀석이라면 분명히 그럴 것이다.

     

    근데 말이지. 지금은 너 때문에 생긴 흉터가 신경 쓰여서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어. , 그렇잖아? 거울을 보지 않더라도 흉터는 아리고, 피부에 느껴지는 촉감이 다르니 엄청 신경 쓰인단 말이야. 그런 걸 신경 쓰지 않는 인간은 없을 거야.”

     

    옛날에는 이런 이야기를 할 때에는 매번 울면서 제대로 말도 이어나가지 못했는데 3년의 경험이 쌓였기 때문인지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어나갔다. 이것도 변해버린 것이겠지.

     

    슬프다……라고 말해야 하겠지.

     

    소설 속에서는 그렇게 썼을 것이다.

     

    사람들은 소설 속의 감정들은 영원하길 바라니깐.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무리 미워해도 잊힌다. 아무리 좋아해도 잊힌다. 아무리 사랑해도 잊힌다.

     

    그렇게 모든 게 잊힐 때 즈음 결국 무덤덤해진다.

     

    나도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슬프다고 느껴야 한다고 머릿속으로는 생각하고 있지만 현실의 나는 무미건조하게 웃으면서 무덤덤하게 상상속의 녀석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아아. 그래도 조금씩은 변해가고 있어. 네가 나에게 준 상처들, 처음으로 미워했기 때문에 생긴 상처, 처음으로 친구가 되어줘서 생긴 상처. 그리고 처음으로 사랑을 했기 때문에 생긴 상처. 모두 다 아물었고 흉터도 사라지기 시작해서 이제는 조금씩 변해가고 있어. 봐봐. 지금도 울지도 않잖아? 아니. 오히려 웃고 있잖아. 아아. 미친 것 같아. 원래부터 늘 꿈이나 꾸는 미친놈이지만, 더 미친 것 같아. 안 그래?”

     

    그래도 아직 완전히 잊지 않았잖아. 이제는 잊어버리고 다른 여자라도 만나는 건 어때? 넌 미쳤지만 나쁜 녀석은 아니니깐 한, 두 명쯤은 네게 관심을 가지는 녀석도 있을 거야.’

     

    왠지 녀석이라면 그렇게 말할 것 같아서, 아니, 그러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아서 나는 잠시 뭐라고 녀석에게 대답해야할까 고민하다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당장 잊어달라고 부탁하지는 말아 줘. 난 무서워. 흉터에 익숙해지는 것조차도 무서워. 난 차라리 지금이라도 상처를 다시 후벼 파고 째서 네가 날 괴롭혀줬으면 좋겠어. 하지만……, 하지만…… 그건 무리겠지. 넌 이상한 곳에서 착한 녀석이니깐 무리겠지. 네가 날 힘들게 만드는 것을 아는 순간 넌 나에게서 멀어지려고 하겠지. 그러니깐 그렇게까지는 말하지 않을게. 단지 문득 생각날 때까지 기다려 줘. 문득 생각나서 널 잊고 있었다고 느낄 때, 그 때 너에게 잊어버려서 미안하다고, 사랑했다고 고백할 테니깐 기다려 줘.”

     

    생각나지도 않을 정도로 반복해 가슴 찢어질듯한 아픔도, 스스로를 죽이는 자조도 아닌, 오로지 공허함만이 담겨진 고백에 대한 답은……오늘도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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